2011. 4. 2. 09:19 잡담

족보


이번에 '의사시험 문제 유출' 등등의 기사가 나와서 생각나는 건데...
뭐, 내용을 보니까 엄밀히 말해서 출제될 문제 자체가 유출된 건 아니고, 기출문제를 복원해서, 소위 말하는 '족보'가 만들어져서 배포된 것 같은데...

새삼 족보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 떠오른다.
학교 시험에서 족보가 도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는데...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족보의 사용을 경멸했다.
그러다보니 족보가 통하는 시험에서는 죽쑬(...) 때가 많았는데... 그래서 통상 말하는 '학점 잘 나오는 교수님'이란 말을 듣고 수강신청하는 게 나한테는 적용이 안돼서 잘못하면 피볼 수가 있었다. 오히려 '학점 잘 안나오는 교수님' 강의를 들을 때 학점이 훨씬 잘나오기도 했고... 무려 학회같은 데서는 신입 학회원을 모집하는 데, '족보 구할 수 있음!'이란 광고까지 해대고 있으니...-_-;(나는 족보 구할 경로도 많지 않았지만, 애초에 구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모 교수님 강의에서는 한번은 어찌나 열이 뻗쳤던지, 강의평가 말미에 '족보가 통한다는 것은 무능의 증거입니다'라고 적었었는데, 그 다음 학기에서 시험 방식이 바뀌어서 절반은 예전 방식대로, 절반은 새로운 방식으로 시험이 치러졌었다(반대로 말하자면 반은 여전히 족보가 통했다!). 그때 말씀하시기를, '누가 족보가 통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렇게 했다'고. 그때 학생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었다. 불만도 장난 아니게 터져나왔고...'어떤 놈이 찔렀냐?'고 말이지. -_-; 나다(사실 나는 절반이나마 여전히 족보가 통한다는 사실이 더 불만이었다.). 사실 이 교수님이 족보가 잘 통하기로 유명한 교수님이었는데... 무려 출제 주기까지 파악이 돼 있었다. '4년 단위로 같은 문제가 나온다'고. 이 교수님은 모 교과서 저자로 유명하셨는데, 솔직히 연구와 저술에 집중하시느라 심도있고 새로운 문제의 출제에는 좀 미진한 면이 있어 보였다.
참고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교수님은
1. 족보가 안통하기로 유명하고
2. (OX 문제같은 경우) 오답을 적으면 감점(더군다나 정답을 적으면 +1, 오답을 적으면 -2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총점이 -를 기록하는 경우도 있었다고.)하는(즉, 괜히 찍지 말라는 취지다.)

교수님이었다. 다들 빡세다고 싫어했지만... 나는 빡센 게 좋다!(출석체크가 빡센 수업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 덧붙여, 대리출석을 경멸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아, 족보를 말 그대로 '참고용'으로 활용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족보가 허용될 수 있는 데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 기준은 바로,
'다른 건 전부 열심히 공부하고 족보 하나만 안본 사람은 다른 건 하나도 공부 안하고 족보 하나만 본 사람보다는 학점이 잘 나와야 한다'
는 것이다.

하지만, 족보가 통하는 현실에서는 다른 건 하나도 공부 안해도 족보만 본 사람이 학점이 잘나오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으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거고...

뭐, 세상 자체가 무한경쟁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무한경쟁이 대학교육의 취지 자체를 몰각하게 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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