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4.07 르누아르 : 여인의 향기
  2. 2011.02.20 이렌느 깡 단베르 양의 초상에 얽힌 뒷이야기 1

사실 다녀온지는 꽤 됐지만, 그래도 제법 인상적인 전시회였기 때문에 적어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르누아르의 그림을 정말로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이렌느 깡 단베르양의 초상'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관계로,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전시회는 한화 갤러리아 포레에서 하고 있고, 서울숲역을 통해서 가실 수 있습니다.(전시회를 둘러보신 다음에 서울숲공원을 산책하시는 것도 매우 좋습니다.) 지금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니 아직 안보신 분들은 놓치지 말고 한번 꼭 보세요.

사실 이쪽은 출구. '_`
현장구매한 티켓 2인 방문에, 1인당 12,000원. 정가는 15,000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 막바지인 관계로,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이 전시회는 기본적으로 체험형 전시에 가까운 형태입니다. 예술작품 진품을 전시해서 조용히 관람한다기보다는, 사진도 찍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소소한 체험을 해볼 수 있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진지하고 정적인 관람을 즐기시는 분들은 다소 아쉬우실 수도 있겠지만, 르누아르의 작품들을 재해석하고, 좀 더 현대적이고 가벼운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입장하실 때 마음에 드는 아로마 오일을 골라서 관람하시는 동안 그 향을 즐기실 수도 있습니다.

 

르누아르의 일생

아시겠지만, 진품은 하나도 없습니다. 복제품이 대부분이고, 주로 영상물의 형태로 '현대적 재해석'을 거친 작품들이 많습니다. 체험형 전시로는, 르누아르의 화방을 꾸며놓아, 르누아르가 된 것처럼 앉아볼 수 있는 자리, 혹은 반대로, 르누아르의 모델이 된 것처럼 앉아볼 수 있는 자리같은 것들이 있습니다.(당연하지만, 둘 다 대표 포토존입니다. '_`)

 

 

'그' 이렌느 깡 단베르 양의 초상. 하지만 이 역시 '현대적 재해석'으로 꽃이 들려 있습니다. 여기서는 당연히 정지화면이라 느낄 수 없지만, 실제로는 사진 속의 인물들이 미소도 짓고 움직이기도 합니다.

 

주옥같은 명언들...

 

출구 쪽에 있는 굿즈샵. 제법 괜찮은 굿즈들이 많습니다. 더 많이 사오지 않은 것을 후회할 정도.

 

대략적인 관람 시간은 여유있게 봤을 때 두시간 이 좀 못 미치는 정도가 되는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에 앉아서 쉬어가실 수 있는 장소들도 많으니까 천천히 둘러보셔도 좋겠습니다. 앉아서 쉬어가실 때에도 주변에서 계속해서 흐르는 작품들을 감상하실 수도 있고 말이죠.

 

마지막에는 굿즈샵이 있는데, 가격이 좀 미묘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돌이켜볼 때, 좀 더 크게 마음먹고 사고싶은 것들을 더 많이 사오지 않은 게 후회되네요. 가장 추천하는 것은 르누아르의 그림으로 만들어놓은 마그네틱입니다. 시중에서 파는 것에 비해서 훨씬 깔끔하게 마감돼 있으면서, 또 자성도 아주 강해서 튼튼하게 붙습니다. 제가 그렇지만, 직장인분들은 사무실 파티션같은 데 붙여놓으시면 일하시는 데도 큰 활력을 얻으실 수 있겠습니다. ^^

사진 찍기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정말 좋은 전시회고, 데이트 코스로도 아주 좋습니다.

얼마 안남았으니까 어서 한번 가보세요!

Posted by 루퍼스



르누아르의 '이렌느 깡 단베르 양의 초상'은 매우 유명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뒷얘기는 그 작품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그 뒷얘기를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렌느 양이 초상화의 모델이 됐을 때, 그녀는 11살이었으며, 초상화는 두 차례에 걸쳐서 그려졌습니다. 그녀는 벨기에에서 1837년에 태어나 파리에서 1922년에 사망한 부유한 은행가, '루이 깡 단베르(Louis Cahen d'Anvers)'의 딸이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루이즈 드 모퍼고(Louise de Morpurgo,1845-1926)였으며, 이렌느는 오빠 로버트(1871-1931)와 남동생 찰스(1879-1957), 엘리자베스(1874-1944)와 앨리스(1876-1965)의 두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르누아르 작 '적과 청' -이렌느의 여동생, 엘리자베스와 앨리스


르누아르는 이렌느의 초상화와 함께, 이렌느의 초상화만큼이나 유명하고 귀중한 '적과 청(Rose et Blue)'혹은 '깡 단베르 가의 소녀들(les demoiselles Cahen d'Anvers)'이라고 알려진 다른 두 여동생들의 초상화도 그렸습니다. 엘리자베스가 청이며, 앨리스가 적입니다. 르누아르가 초상화를 다 그렸을 때, 깡 단베르씨는 그 초상화들을 극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집'이라고 불렸던, 파리에 자신이 소유하던 호텔에 처박아 두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단베르 가에서는 르누아르에게 대금을 제때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일이 끝날 때까지도 대금에 합의를 보지 못했고, 결국 르누아르는 초상화들에 대한 대금으로 1500프랑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때까지 르누아르가 받았던 어떤 액수보다 많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급의 고객들에 대한 동류의 그림의 대가로 일반적으로 지급되는 대금보다는 현저히 낮은 금액이었습니다.


이렌느의 첫 남편 모이즈 드 카몬도(Moïse de Camondo)



이렌느는 그 부유하고 귀족적인 환경에서 자랐으며, 그녀가 19살이 되던 해인 1891년 10월 15일, 가족의 재산을 불리기 위해서 9살때 아버지(Nissim)와 삼촌(Abraham-Behor)를 따라 오스만 제국(터키)로부터 파리로 옮겨온 모이즈 드 카몬도(Moïse de Camondo)와 결혼했습니다. 그들은 엄청나게 부유한 은행가들이었습니다. 카몬도는 18세기 프랑스 예술품 수집에 열중해 있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유행이었으며, 그 유행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 이렌느의 가족들이 르누아르의 작품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이렌느 부부는 두 아이를 뒀습니다. 그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니심(Nissim)은 1892년에 태어났으며, 베아트리체(Beatrice)는 1894년에 태어났습니다. 이렌느는 1902년에 그녀의 남편과 헤어져서 두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그녀는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찰스 삼피에리 백작(Count Charles Sampieri)과 1903년에 재혼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혼생활 또한 1924년에 끝났습니다.


베아트리체와 니심(니심이 사망하던 해 찍은 사진)


이렌느의 아들은 1차 세계대전 때의 전투기 조종사였으며, 1917년 9월, 25세의 나이로 뫼르트에모젤의 공중전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녀의 전 남편이 죽은 1935년, 대부분의 남편의 재산은 그의(또한, 이렌느의) 딸인 베아트리체에게 돌아갔습니다. 또한 이렌느의 전 남편은 아들을 기리기 위한 나심 드 카몬도 미술관(Musée Nassim de Camondo)을 세우기 위해서 그가 파리에 소유하고 있던 집과 모든 예술품들을 기증했습니다.
이렌느의 하나만 남은 자식이었던 베아트리체는 레옹 라이나하(Léon Reinach)와 결혼했으며, 1920년생의 파니(Fanny), 1923년생의 베르트랑(Bertrand)의 두 자녀를 두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유럽은 유대인에게 더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렌느의 여동생인 엘리자베스(푸른 리본)는 50년 전에 이미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그녀의 유대인의 후손이라는 것이 드러났고,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습니다.
이렌느의 딸, 베아트리체와 이렌느의 손녀들, 그리고 베아트리체의 남편은 1943년에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습니다. 카몬도 가, 혹은 전(前) 라이나하 가 사람들은 아우슈비츠에 1944년 11월 25일에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으며, 다른 914명의 사람들과 함께 곧바로 가스실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이렌느는 1903년에 찰스 삼피에리와 결혼하면서 바뀐 이름과 이른 기독교로의 개종으로, 그녀는 나치로부터 비교적 안전할 수 있었고, 다른 가족들과 같은 운명을 맞는 것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파리의 아파트에서 조용히 살면서 전쟁기간을 보냈습니다.

1946년, 르누아르의 작품인 '파란 리본을 한 소녀(La petite fille au ruban bleu)'의 모델이 이렌느 자신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렌느는 1949년에, 도둑맞았던 그림들을 간신히 되찾아 에밀 뷔를르(Emil Georg Bührle)에게 팔았습니다.
오늘날, 그 작품들은 취리히의 뷔를르 재단(혹은 뷔를르 박물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렌느는 베아트리체의 유일한 상속자였으며, 카몬도 가의 재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녀는 91세까지 생존했으며, 혹자는 그녀가 전 재산을 탕진했다고도 합니다. 그녀는 1963년에 사망했습니다.


이렌느 가의 가계도


주: 본 포스트는 http://random-anb.blogspot.com/2010/10/i-have-replica-of-renoir-painting.html 의 게시물을 원 저작자의 허가 하에 번역/수정한 것입니다. 일체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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