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너무 안와서 적어보는 글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속이 끓어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물론 이 일때문에 끓고 있는 건 아니다.)
뭐 ,한번쯤 다뤄보고 싶었던 주제기는 한데, 이렇게 잠을 한참 안잔 상태(지금이 4시 5분)에서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지 좀 의문이긴 하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이외수 작가가 됐다. 시기적 계기는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이외수 씨의 트윗이 올라온 때가 계기가 됐고.

그때 이외수 작가는 '천안함 소설쓰기는 나도 못당하겠다'는(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는 '내가 졌다'로 돼 있다고 하는데... 이 쪽이 더 의미가 명확하다고 생각돼서 수정했다.) 트윗을 올렸고, 다들 이를 퍼나르면서, '봐라, 이외수 작가도 정부가 사실을 날조한다고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정부조작설에 힘을 싣는 근거로 사용됐던 상황이었다.

이 사안에 대해서 한가지 의아했던 것은, (내가 어느 쪽이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지는 제쳐두고서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데 대해서 어떤 과학적 근거도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외수 작가는 무기, 선박, 재료공학 등, 본 사안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데 관계되는 어떤 분야에도 전문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본 사안에서 이외수 작가가 보인 입장은 순수히 정부비판적 시각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천안함 사건같은 경우는 100% 가타부타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다.(물론 전에도 적은 적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뢰에 의한 침몰 가능성을 가장, 매우 높게 보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외수 작가가 사회문제에 대해 보인 시각에 문제성이 있다고 보여진 경우는 이 경우만이 아니었다.

훨씬 이전의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에 대해서도, 이외수 작가는 'MBC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황우석 박사 죽이기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식의 황우석 박사를 옹호하고, (당시에 PD수첩을 통해서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을 까발린) MBC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사안은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이 사실이었음으로 드러났던 것이다.(논문이 진짜였다고 하더라도 연구 과정에 엄청난 도덕적 문제가 개입돼 있음은 또 별개다. 이를테면, 연구원들로부터 난자 기증을 받았다거나. 별 문제 없을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상 연구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연구 책임자에 대해 난자를 기증하는 것은 자유로운 선택의 여지가 매우 좁아진다.)

즉, 정리하자면 이것이다.
'본 사안에서 이외수 작가의 견해가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해서는 확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견해에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이끌어내기 위한 근거가 전무하다는 것만은 확언할 수 있으며, 이미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이끌어내야 하는 또다른 사안에서 잘못된 결론을 내린 적이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말이다.


이외수 작가의 견해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데 대해 이외수 작가가 가장 많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비유적으로 얘기한 것 뿐인데 왜 곧이곧대로 듣느냐?'는 것인 것 같다.(혹은, '행간을 읽어야지'라거나 '농담으로 말한 걸 왜 진지하게 이해하느냐?'라거나.) 한참 전에도 봤는데, 오늘도 또 보이는 걸 보면 주기적으로(?) 쓰는 글같기도 하고... 글쎄... 난 이와 같은 반응을 보면서 매우 씁쓸함을 느끼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본인의 글에서 발생하는 논란이나 문제의 소재를 읽는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와 같은 반응은 스스로가 가진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고 있는 데서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유명 작가, 기타 유명인으로써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발언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인식해야 하며, 그만큼 발언에 있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의 발언이 어떤 형태로 해석되지를 항상 염두해야 하며, 그 가장 기초에 있는 것은 문장이 가진 가장 기본적 의미이다. 특히, 민감한 사회적 문제를 다룰 때에 있어서는 '댁이 알아서 알아들어야지'같은 반응은 무책임하기 그지없을 뿐이다.

나는 이와 같은, '비유적으로 쓴 것 뿐인데 왜 곧이곧대로 듣느냐?'는 반응은 솔직히 작가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반응을 선별적으로 거부하기 위해서 취하는 입장같다. 이를테면, 정부비판적인 '비유'를, 역시 진지하게 해석해서 정부를 까는(...)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어째서 곧이곧대로 듣느냐?'는 반응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스스로 주장하는 '농담'은 정말로 그것을 진지하게 해석하는지 여부와는 별로 상관없이, 원하는 반응을 선별하고 반론을 묵살하기 위해서 보이는 반응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반응에 대한 대처는 상당히 미묘하다. 이를테면, 전에 버스 정류장에 '쥐 그림'을 그려서 문제가 됐던 사람이 있었는데... 사실 이 '쥐 그림'의 진짜 의미에 대해서는 그린 사람도 알고, 그림의 소재가 된 사람도 알고, 우리도 알고 있다. 까놓고 말해서 대통령 까려고(...) 그린 의미라는 것을. 물론 이걸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대한 답은 사실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모욕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웃자고 한 일에 왜 죽자고 달려드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건 솔직히 뻔뻔스럽다고 생각한다.(여담이지만,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조정해야 한다는 쪽의 입장이다. 적어도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아, 다른 게 아니라, 전의 '그 일'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생각했던 건데... 나는 전에는 소위 말하는 '최진실 법'같은 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 법이 악용될 수 있는 것을 더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해당 법안이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을 겪고 나서 보니, 인터넷상에서 너무나도 쉽게, 죄의식 없이 이루어지는 범죄에 대해서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됐다. 전에 인터넷 강사가 게시판에 올라온 게시물에 대해서 모욕죄로 고소한 데 대해서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느냐?'는 식으로 비판적인 입장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고소를 적극 찬성하고 지지한다. 한가지 묘한 건, 이외수 작가 자신도 인터넷상에서 발생한 모욕행위에 대해 고소한 적이 있다는 것. -_-; 이런 데 대해서 '웃자고 한 일에 왜 죽자고 달려드냐?'는 반응이 나온다면 뭐라 할까?)
이런 경우의 당사자의 입장은 지극히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입장에 동조해서 대상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과는 손발이 맞아서 말마따나, '진지하게' 대상을 까면서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왜 진지하게 반응하냐?'는 식이기 때문이다.

뭐랄까... 어렸을 때 이외수 작가의 소설(특히 '황금비늘')을 읽으면서 감동받았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어서 더욱 씁쓸한데...

각설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들은 자신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충분히 고려하여 발언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입장을 밝히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도 나름대로의 정치적 입장을 가질 수도 있고, 그걸 표현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입장을 표명하는 데 치중해서, 정치적 입장과는 별개로, 과학적, 사실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에서 자신의 영향력 자체를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함으로써 올바른 판단을 흐리는 일은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 글을 가능한한 퍼가는 일은 자제해 주십시오. 불필요한 싸움을 벌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외수 작가의 트위터에 보낸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 사양합니다. 왜 이 글을 적냐 하면, 예전에 삼성 트위터에서 제 블로그에 온 로그가 있어서 살펴보니 누가 삼성 비판적인 제 글을 삼성 트위터에 보냈던 적이 있어서...-_-; 뭐, 정 하고 싶으시다면 제가 막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어쨌든 제 입장은 그렇습니다. 이상입니다.

Posted by 루퍼스
최근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어서 시끄러운데...
흔히 '어떻게 봐도 당연히 우리 땅인데 왜 자꾸 찝적대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다른 건 차치하고 국제법적 관점에서 이 사안을 보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국제법적 관점에서도 '당연히' 우리 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좀 복잡하다. 아니, 일본 땅이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좀 복잡하다.)

국제법상 영토주권을 가질 수 있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국가'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때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이전에 우리가 국가로써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주장하기가 미묘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국제법이 어떤 계기로 발달하게 됐는지를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차 세계대전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강대국들의 식민지 쟁탈전이었다. 각국이 앞다퉈 식민지를 넓혀가는 상황에서,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든 국가들끼리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고, 이것이 발단이 되어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에, 강대국들은 식민지 확장에 있어서 강대국들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규칙'이 없으면 또다시 세계대전의 참화가 일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국가간 관계에 있어서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는 당연히 식민지 확장과 지배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졌고, 피식민국에 있어서는 불합리한 부분들도 많았다.

즉,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식민지 지배를 뒷받침하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국제법의 발달이 이루어졌다고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토 주권을 갖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그 주체가 '국가'이어야 한다는 것을 대전제로 삼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지만, 그게 그렇지가 못했다.

'부족 국가'는 국가로써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곧, 부족 국가는 영토주권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국가'와 '부족 국가'를 가름하는 기준이 불분명한 것이 문제가 되는데... 사실 이 당시 강대국들 사이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여기 낀 우리(강대국)들'은 국가고, '우리가 식민지로 삼은(을)' 땅에 있는 원주민들은 부족 국가로 간주해버리면 끝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적 점유관계까지도 넘어서는 것으로써(즉,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면 역사적으로 해당 지역을 점유하고 있었더라도 영유권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를테면, 북아메리카 대륙은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아메리카 원주민(소위 말하는 '인디언')들이 점유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는 현 미국인들, 아메리카 원주민들, 타국 사람들까지도,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즉, 우리가 독도에 대해서 특히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역사적 사실관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현 미국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차지한 것이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북아메리카 반환 얘기가 거론되지 않는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부족 국가(혹은 그냥 부족) 이하로 취급함으로써 영토 주권 보유 여부를 논의할 가능성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조선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일본의 전면적 식민 지배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부족 국가'밖에 없었다고 취급되는 상황마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태평양 전쟁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조선 식민 지배는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관계였다.

우리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이론의 여지 없이(반대로 말하자면, 꼭 이게 아니라도 영유권의 주장 자체는 가능하다. 공격받을 여지가 있어서 그렇지.) 주장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조선이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을 가질 수 있는 국가로 인정
2. 조선은 독도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 있었음
3. 대한민국은 조선의 국통을 이은 국가

그런데 이게 전부 100% 인정된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1번이 인정이 안되면 3번은 당연히 인정이 안되는데, 1번 자체가 당시 국제법 관계상으로는 미묘한 부분이 있어서...(즉, 당시의 강대국들 사이에서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 지배가 인정됐던 만큼, 조선은 부족국가로 간주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미국에 대해사도!) 덧붙이자면 삼국시대의 고구려, 신라, 백제를 우리나라는 한 민족이 세 나라로 갈라져 있던 것으로 인식하지만, 외국 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셋 다 서로 다른 부족국가로 인식된다. 쉽기 말하자면, 국제관계에서 국가를 결정짓는 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민족'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민족적 동일성이 있는 경우에는 동일한 국가로써 이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크게 위험한 생각이다. 즉, 외국 사학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고조선,신라,고구려,백제 등등등은... 전부 다른 고대국가다. 단순히 '한 민족이 갈라져서 나라를 세웠다'가 아니라, 그냥 '다른 나라'라는 것이다. 더불어, 애초에 국제법 주체로써의 국가로 인정되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말이지. 즉, '같은 민족'이라도 이 시절에 만들어진 독도 영유권 문서같은 경우는 국제법상 효력이 없다.
반면, 2번은 비교적 입증이 쉬운 편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제시하는 각종 역사적 유물이나 그를 토대로 한 근거들은 2번을 입증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이같은 것들은 국제법상 효력이 있는 증거로 인정되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1번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3번만으로도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겠지만, 우리나라가 많은 타국에 대해서는 조선을 이은 국가가 아니라, 신생국가로 취급되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즉,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국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가, 태평양 전쟁에서의 일본의 패망을 계기로 새로 설립된 국가로 취급된다는 것.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증명하는 것은 주로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는 데 집중해 왔다. 분명히 좋은 일이고, 가치있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예상치못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나라가 제시하는 삼국~조선시대의 근거들에 대해서는 이런 평가가 가능해진다.
신라나 조선이 독도를 지배하고 있다고 명시한 문서도, 왜(일본)가 독도에 대한 한반도 국가의 지배권을 인정하거나, 독도에 대한 접근을 금하는 문서가 있더라도, '어차피 그 문서의 주체들은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국제법상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고 처리돼 버릴 수가 있다.
한마디로 보자면,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는 둘 다 국가가 없었는데(즉, 그 당시에 독도에 대한 영유권 관계를 다루고 있는 문서들은 실효성이 없다.), 영토 주권을 가질 수 있는 근대 국가를 먼저 세운 것이 일본이고, 일본은 부족 국가에 머물고 있던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독도에 대해 국제법상 인정되는 영토주권이 처음으로 설정될 때의 주체는 바로 일본이라는 식이다.
극단적으로는 조선시대 이전의 역사적 자료들이 아무 의미도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국제재판 체계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식민지주의에 근거한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에나 위험성은 존재하는 거니까... 거기다 이건 그렇게 작은 위험성도 아니다.
우리는 독도가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당연히' 우리 영토에 속하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진지하고 심도있는 논의와 주장이 이루어질 필요성이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고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카레가 인도음식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나머지, 카레에 대한 권리를 지키려는 인도 측의 어떤 노력도 없었고, 일본이 카레에 대한 특허출원을 하는 일까지 발생했던 적이 있었다. 이런 사안을 되새겨서 우리도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되돌아보면서 좀 더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Posted by 루퍼스

제 스스로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그래왔고, 그러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돼서 잠깐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현대에 그 중요도와 위험도가 보다 부각된 많은 질병 중에 정신과 질환으로는 우울증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봅니다. 저는 크게 봐서, 암 발병률의 비약적인 증가도 같은 맥락의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암은 마음의 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암은 스트레스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질병이며, 이는 우울증도 마찬가지로, 종합적으로 보자면 암 발생률이 비약적으로 늘 정도로 현대인은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고, 그만큼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도 비약적으로 늘어났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 글은 제 나름대로의 경험을 토대로 한 글이긴 하지만, 꼭 제가 바라던 처우를 기준으로 해서 작성된 것은 아닙니다. 좀 전에 인터넷에서 자살충동과 자살 기도 경험을 호소하는 분을 보게 됐고, 그 분을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서 생각해볼 기회가 생겨 작성한 글입니다. 어느 쪽이냐면,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도 지금부터 언급할 사항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스스로 같은 일을 겪었으면서도 그런 것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이를 의식적으로 고려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울증, 특히 그 심한 증상으로써의 자살 충동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많은 경우에 충분한 고려가 이루어지지 못해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보다 더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생각해볼, 주의해볼 만한 말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1.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안그런 사람 없어.

 이와 같은 말들을 하는 이유가 당사자가 겪고 있는 일이 '모두가 겪는 고민(일)'이라는 것을 전해서 상대방이 사안을 좀 더 가볍게 대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이미 심각한 상황/사안을 대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말을 들으면 '이 사람은 내 일을 진지하게 생각해주지 않는구나. 이 사람에게는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해도 의지가 되기 어렵다'는 인상을 받기 쉽습니다. 이는 곧 당사자를 고립시켜 안쪽으로 붕괴되기 쉽게 만들어 버립니다.

 거기다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당사자가 특별히 중요하고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겪는 사안조차 가볍게 넘기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당사자에게 전달되기 쉽습니다. 즉, 이와 같은 얘기를 듣게 된 사람은 그 나약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그런 부분을 드러냈다가는 또다시 나약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것을 두려워해서 이런 말을 한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을 털어놓고 상담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좀 더 향상된 버전으로는, 예를 들어, '너보다 더 어렵게 사는 사람도 있어. 저기 장애인 봐라. 저기 장애인도 열심히 살잖냐. 그런데 네가 그러면 말이 되냐?'같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사자보다 사회적으로 보다 열악한 조건(절대로 장애인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에 있으면서도 삶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을 제시함으로써, 당사자 역시 당연히 그와 같은 것들을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고 압박을 주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본받을 만한 모습이긴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고 해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나약한 것도, 혹은 엄살을 피우는 것도 아닙니다. 각자에게는 각자 힘든 일이 있고, 각자가 가진 힘든 일들은 모두 똑같이 중한 일들입니다. 보다 어려운 조건에 있는 사람을 보고 스스로 삶의 의지와 희망을 얻는다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주위에서 억지로 말하는 것이라면 어떤 도움도 되기 힘듭니다.
 애인이 있으신 분들은 생각해 보십시오. 애인과의 관계가 잘 안풀려서 그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솔로인 상대방이 '너는 애인도 있잖아. 나는 애인도 없는데 웬 엄살이야? 오늘도 애인도 없이 혼자 방바닥을 긁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라고 한다면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힘들겠죠. 우리가 보기에 돈도 많이 벌고 자살할 이유 따윈 아무 것도 없어보이는 대기업 회장들도 종종 자살하는 세상입니다.


2. 사춘기라서 그래. 사춘기가 오래 가네.

 어떻게 보면 이런 말은 1.과 같은 맥락의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정말로 사춘기 정도에 해당하는 나이(10대)에서, 사춘기 정도에 해당할 수 있는 나이(20대 초중반)까지에 해당되는 상대방에게 주로 나오기 쉬운 말입니다. 물론 정말로 사춘기이기 때문에 사춘기의 복잡한 심리상태의 발현으로써 이와 같은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말은 정말로 사춘기인 청소년을 상대로 하고 있더라도 주의하는 것이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춘기여서든,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든 그 불안을 좀 더 건강하게, 효과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느 쪽이든 소중히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3. 왜 그렇게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니?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다 해결되게 돼 있어.

 우울증을 앓는 사람을 타인이 보기에는 지극히 말도 안되는 이유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 사람 자체가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 정도의 고민을 할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며,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비관적 상황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와 같은 감정상태 자체가 비관적 상황입니다.


4. 네가 정말로 자살할 거라면 벌써 했어. 그렇게 말해도 자살하지 못할 거야. 이왕 자살하지 못할 거라면 징징대지 말고 열심히 살아.

 이런 경우는 스스로 어차피 자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납득시켜서 자살을 시도하는 것 자체를 막으려는 취지에서 이루어지는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로써 자살을 부추기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으므로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언동임은 물론이고 말이죠.
 많은 경우에 자살 충동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괜히 엄살피우는' 것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어떻게 보면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나온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살자들이 자살 이전에 자살의 징후를 보이며, 이와 같은 징후를 보일 때 좀 더 주의를 기울여주는 것으로 수많은 자살자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살자들의 주위 사람들이 가장 마음아파하는 경우가 이런 것들을 그냥 흘려넘긴 것이기도 하구요.(제 스스로도 그랬습니다.)



 더 떠오를 듯도 한데, 당장 생각나는 부분은 여기까지네요.
여러분들이 타인의 일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줘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으로, 자살충동으로 고민하는 누군가가 여러분들께 그와 같은 일을 토로하고 도움을 구한다는 것은 여러분들을 그만큼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조금은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정 어렵다 싶으면 그냥 아무 말 없이 말하는 걸 듣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그것만으로도 힘들어하는 사람은 크게 고마워하고, 많은 부분이 해소되었다고 느낍니다.
 제가 쓴 글이 많은 분들의 심기를 거스를까 일면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의 사회는 어쩐지 타인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것을 나쁜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 글에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겁니다.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 글에서 뭔가를 얻고 생각할 여지를 발견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저는 거기에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드리겠습니다.
 제 스스로 우울증을 앓았고, 현재도 치료를 받고 있는 입장에서, 하지만 전보다는 조금 더 희망을 갖게 된 입장에서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제가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도 약간은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당사자로써 글을 쓰게 되면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서, '자기가 아쉬우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지'라고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되신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뭐라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그저, 재차 말씀드리지만, 뭔가를 얻을 수 있는 분이 한분이라도 계시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그렇지 못하신 분들께는 부디 관용을 베풀어 눈을 감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정신과 전문의도, 전문 상담사도 아닙니다. 오히려 환자입니다. 이것은 제가 느낀 바이지, 객관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만일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 우울증과 자살충동으로 고통받고 있는 분이라면, 두려워 마시고 병원을 찾아가십시오. 저보다 훨씬 전문 지식을 갖추고 있고 여러분들을 배려해주고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실 분들이 여러분들을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울러, 주위에 이런 일들로 고통받는 분들을 두신 분이시라면 그들의 손을 잡아 이끌어 병원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지만, '병원에 가는 게 크든 작든 도움이 됩니다'

 앞으로 우울증이나 자살에 관한 글들을 몇개 더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로써 직/간접적으로 우울증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자살충동을 잊을 수 있는 분이 한분이라도 계신다면 보람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그런 분이 계시다면 다른 분들과도 많은 경험 나눠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의 조언이 더 와닿는 법이니까요.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글을 너무 장황하게밖에 쓰지 못해 여러모로 죄송스럽습니다.
평안하시고, 좋은 하루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Posted by 루퍼스
얼마 전에 떡볶이를 해먹으려고 재료를 사기 위해 근처 슈퍼마켓이 들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재료인 떡을 고르는데, 어쩐 일인지 주성분인 쌀이 죄다 수입산이었다.
나는 다소 비싸더라도 일부러 국산 쌀로 만들어진 떡을 고르기 위해서 이것저것 골랐는데, 그래도 여전히 국산 쌀로 만들어진 떡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반면, 한편으로는 쌀 소비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농가에 근심거리가 된다는 뉴스를 들은 적도 있다.
이를 토대로, 근래의 쌀 소비 위축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봤는데, 얼마 전에, 쌀 재고량이 늘어나는 사태에 대해, 쌀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수도, 라면도, 건빵도 쌀로 만들어라'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이게 문제인가? 국수도, 라면도, 건빵도 밀가루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쌀 소비가 위축되는가? 글쎄, 내 생각은 아니다. 떡볶이떡을 사면서 느낀 거지만, 쌀 생산품중 상당수는 상당부분의 쌀을 수입산으로 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은 비단 떡볶이떡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밖에도 쌀이 재료인 제품들을 이것저것 떠올려보면 그 중의 상당수는 수입산 쌀로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왜냐고? 수입산이 싸니까.

그러니까, 지금 '~를 쌀로 만드는' 문제는 진짜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를 쌀로 만들어라'고 해도 본질적인 의미의 쌀 소비 촉진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물론 그와 같은 정책을 통해서 쌀 소비는 늘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쌀 소비량의 대부분은 수입 쌀 소비의 증가로 이어지지, 농가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쌀 소비로는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근시안적으로 생각해서 무조건 식품들의 재료를 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쌀 식품들의 주재료인 쌀을 국산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노력이 보다 필요할 것이다.
그냥 무조건 이것도 저것도 쌀로 만들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지금 유통되고 있는 쌀 식품들을 국산 쌀로 만들 수 있게 하기만 해도 쌀 소비는 엄청나게 늘 것이라고 생각된다.

Posted by 루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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