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결론부터 말하고 보자면 나는 비정규직 철폐에 대해서는 절대반대다.
이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으실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내가 논리전개를 통해서 어떤 결론을 내리는 데 있어서 그 여러 전개 과정에 각자 타당한 부분, 혹은 타당치 못한 부분이 있어서 혼란이 생긴다면 각각의 결론대로 나아갔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를 비교해서 결론을 내리는데...(이건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결정적 차이라고 한다면 고용의 연속성일텐데, 비정규직을 철폐해서 모든 고용관계를 정규직으로 한다고 할 때,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모든 고용관계가 연속적으로 이루어지고, 해고가 유연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다음과 같은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업에서 그 사업이 번창하는 성수기가 있고, 사업이 번창하지 않는 비수기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성수기에는 150명의 인원이 필요한 반면, 비수기에는 50명이면 충분하다. 이때, 전원 정규직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성수기에 고용한 150명의 인원을 (전혀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수기까지 그대로 데려가거나, 혹은 성수기에도 50명만으로 사업을 계속하는 선택밖에 불가능하게 된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경직된 고용관계인가?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는 것은 '같이 죽자'는 것밖에 안된다고 생각한다.

즉, 결과를 먼저 생각해볼 때, 고용과 해고가 유연하게 이루어지는 고용관계, 즉, 비정규직의 존재 자체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의 존재의 불가피성을 전제로 할 때, '전면적 철폐'는 생각하기 어려운 얘기고 말이지.


종종, 비정규직에 대해서 당연히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근로환경이 안좋다거나,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다거나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글쎄, '원칙'적으로 볼 때는 비정규직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얘기다. 혹자의 경우에는 '비정규직은 규정상으로도 최저임금을 안지켜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던데, 잘라 말해서, 잘못 알고 있거나, 일부러 틀린 정보를 흘리는 것이다.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당연히 부당한 근로환경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도 없고,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다도 된다는 규정도 당연히 없다.(최저임금이 지켜지지 않는 규정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 역시 정규직/비정규직하고는 관계 없다. 일정 인원-5인 미만- 이내의 소수의 근로자, 혹은 가족으로 구성되는 사업-주로 가내수공업같은 거다-이나 단속적 근로-수위같이 근무시간 전체를 100%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 순찰, 대기 등으로 Idling하면서 근로하는 경우-의 경우에는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실 단속적 근로는 최저임금이 적용이 되기는 하나, 통상 최저임금보다는 낮다.)

간단히 말하자면, 비정규직 자체는 '고용기간이 제한돼 있고 해고가 자유롭다'는 것 외에는 정규직과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된다. 이 경우에, 고용기간 제한이 없이 연속적 근로를 보장하는 정규직의 전면적 적용을 바란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고.

물론, 고용환경이나 임금에 대한 실제적인 문제는 개별적으로 '고용환경 개선', '최저임금 보장' 등의 형태로 확실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은 말 그대로,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환경 개선'과, (역시 비정규직에 대한) '최저임금 보장'으로 이루어져야지, '비정규직 철폐'라는 형태로 이루어지기를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비정규직의 근로환경이 열악하거나,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현실적 문제로써 별도의 절차를 통해 해결되어야 하지,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의 비정규직 제도에 일정 부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그것은 비정규직 근로기간(2년) 내에는 고용주가 근로자를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비정규직 제도에서 한가지 분명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정규직 제도에서 오는 고용관계의 유연성 자체는 긍정하되,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현재와 같이 2년 내에는 '언제나' 해고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2년 내의 기간으로, '일정 기간'을 정하여 계약하고, 근로자가 퇴직하기 전에는 그 기간 동안의 고용 자체는 보장해주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위의 경우에, 성수기가 3개월이라고 한다면, 비정규직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3개월'을 명시하여 최소한 3개월 간의 고용은 보장해주도록 하는 것이다.



거기다 이번 일본 원전 사고에서 '비정규직을 사지로 내보낸다'는 말을 듣고 한가지 드는 생각이 있는데...
이런 사안에서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것은 해당 직원의 정규직/비정규직 여부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사안에서 비정규직이 사용되는 원인과, 해당 직원들이 비정규직이 된 원인은 근원적으로는 같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해당 직원이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못하고,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것은 정규직 직원에 비해 '스펙'상 불리한 위치, 즉, 전문적 지식이나 경력, 자격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장기간의 지속적인 고용이 필요한 전문적 지식과 경력을 갖춘 직원의 경우에는 당연히 정규직으로 채용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원전 사고와 같이, 설령 위험하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회사 입장에서 그런 전문적 지식이나 경력을 갖춘 고급 인력을 우선적으로 사용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물론 그런 인력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정규직/비정규직 여부를 불문하고 그런 고급 인력이라도 투입되어야 할 테지만, 단순 노무 종사자의 지식과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라면 까놓고 말해, 당연히 저급 인력을 투입할 것이다. 이보다 고급 인력이 투입되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당연히 전문 지식을 갖춘 고급 인력이 투입될 것이고 말이지. 원전 사고와 같이, 나중에 사태가 얼마나 악화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춘 인력을 보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런 사안에서 처음부터 전문 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위험하고 낭비적인 일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해당 인력이 전원 정규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똑같은 정규직 중에서 사건에 투입되는 인원을 종합해 본다면 고용관계가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구성되어 있을 경우와 동일한 사람들일 것이다.
즉, 비정규직으로 대처 가능한 사안에 대해서, 정규직 A,B와 비정규직 C,D,E가 있을 경우와, 고급 인력 정규직 A,B와, 저급 인력 정규직 C,D,E가 있을 경우에는 정규직/비정규직 여부를 불문하고, 어차피 C,D,E가 투입될 것이라는 것이다. 즉, 얼마나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느냐는 정규직/비정규직 여부하고는 별 관련이 없고, 궁극적으로는 해당 인력이 저급 인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것도, '저급인력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위험한 일에 우선적으로 투입되는 것도 '저급인력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원인을 공유한다고 해서 한쪽의 결과가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냉정하게 들릴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군사작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예비군이나 징집병은 소모적 작전(극단적으로 나쁘게 말하면 총알받이)에 동원되고, 현역은 중요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작전에 동원된다는 것은 상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국가 입장에서 현역은 '보전해야 할' 중요한, 숙련된, 나름 정예의 전력이다. 말하자면, 현역은 일종의 정규직, 예비군은 비정규직일 것이다. 이때, '누군가는 해야 할' 작전에서 소모적 작전에 예비군이 동원되고 현역을 보전시킨다고 해서 여기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같은 군인이기 때문에 장군과 대통령을 최전선에서 싸우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이상과 같은 내용들이 합리적으로 유지가 되기 위해서는 한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즉, 모두에게 고급 인력이 될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경제적 문제 등의 이유로 인해 본인의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급 인력이 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사회 전반에 자기계발의 부익부 빈익빈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모두에게 고급 인력이 될 기회를 부여해야 할 국가/사회적 의무보다 기업의 인력 채용의 유연성이 우선된다는 것이다. 즉, 국가와 사회는 모두가 고급 인력이 될 기회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기업에 특정 인물이 채용되는 과정에서 해당 인물이 명백히 저급 인력이라면, '기회 부여'라는 명목으로 억지로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할 의무를 부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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