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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19 비디오드롬(Videodrome, 1983)
먼저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이 영화는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물론 아주 이해가 안될 정도로 난해한 수준은 아니다. 적당히 호러 느낌도 나고, 적당히 야한 느낌(구체적으로는 Exotic이라고 표현하고 싶다.)에, 나름대로의 철학을 표현하려는 의도도 엿보이고, 전체적으로 볼 때, 상당한 수준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이 작품을 다루게 된 것은, 이 작품이 이후 많은 다른 작품들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와 같은 작품들 중 하나가 바로, '판타스마고리아 2'이기 때문이다. 판타스마고리아2를 플레이해본 사람들은 '비디오드롬과 비슷한 느낌이 난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제법 있었는데, 근본적으로 판타스마고리아2가 비디오드롬의 영향을 매우 강력하게 받았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전개, 그로테스크한 연출도 그렇고, 심지어는 BGM의 음침한 느낌마저도 비슷하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는 자극적 미디어에 의해 자아를 잃게 되는 현대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터넷에 퍼져있는 많은 감상 후기들을 보고 절충하면 이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상으로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하려고 하다가는 자칫 작품의 주제의식을 편파적으로 파악해서 오류를 만들까 걱정이다.



작품 내에서 주인공인 맥스는 작품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더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혼란을 겪게 된다. 이는 맥스뿐만 아니라, 관객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TV 속의 입술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맥스>

이 작품을 좋아하는 또다른 이유는 이 작품의 주연을 맡은 배우가 '제임스 우즈'였기 때문이다. 이 배우는 미드 '샤크(Shark)'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악질 변호사를 하다가 그 생활을 청산하고 검사가 되어 악당들을 잡아넣는 역할을 하는데, 이 모습이 많은 감명을 주기도 했고, 작품 자체도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샤크에서의 제임스 우즈의 목소리가 훨씬 멋졌다.

단순히 호러 영화를 보려고만 생각했다면 지루함을 많이 느낄 법한 영화다. 하지만, 작품 내에 담긴 철학을 느낄 수 있다면, 최소한 그렇지 못하더라도, 작품 전체에 흐르는 기괴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작품이 만들어진 당시에 이미 스너프의 개념이 정립됐던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작중에서 '스너프 필름'에 대해 다루고 있는 듯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 당시에 이미 미디어의 자극성에 인간성이 매몰되어, 스너프와 같은 데 대해서도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보는 것보다 둔감하고 무덤덤해지는 것을 예견했던 것일까...?


"줄거리가 뭐야? 이제 해설좀 들어보자고. 내 말은, 저 흑인은 누구야? 정치범인가?"
'줄거리같은 건 없어. 그런 식으로 한시간은 반복될 뿐이야.'
"무슨 식으로?"
'그렇게. 고문하고, 죽이고, 사지를 끊어놓지.'
"이 방만 계속 나오는 건가?"
'그래. 정말 미친 짓이지.'
"참신한걸."
'변태들한테나 그렇겠지.'
"정말로 참신해. 그러니까 내 말은, 거의 비용이 안들잖아.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군. 진짜로 진짜같은걸. 이런 연기가 가능한 배우들을 어디서 구한 거지?"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개념을 표현하고 있는 듯한 장면이 있다는 것이다.


<헬멧을 쓰고 있는 맥스>

맥스가 중간에 '환각을 보여주는 헬멧'을 쓰고 있는 부분인데, 이 헬멧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착용자에게 보여주며, 맥스는 이 헬멧을 쓰고 또다시 현실과 환각의 경계에서 헤매게 된다.
그런데, 이 헬멧의 작동 원리나 작중 이미지가 현대에 확산되고 있는 증강현실의 일종같은 느낌을 강하게 준다. 현대에 사용되고 있는 증강현실은 현실의 사물과 같은 데 투영해서 그 사물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데 머무르고 있지만, 이와 같은 증강현실이 기술발달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정말로 증강된 '현실'을 보여주는 단계까지 가게 된다면 우리들 역시 비디오드롬에서처럼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혼동하게 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헬멧을 통해 보이는 모습. 저 여성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헬멧이 보여준 환각일 뿐. 아마도.>

새삼 여러가지 방향으로 생각해보니 정말 여러 부분에서 시대를 앞서갔던 영화가 아닌가 싶다. 기괴한 영상에 어느 정도 면역이 있고, 생각할 거리를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권할만 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판타스마고리아2의 팬에게도 말이지. 물론 판타스마고리아2는 비디오드롬의 분위기를 따른 것 외의, 비디오드롬만큼의 깊은 철학이 있는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두 작품을 같이 접해보면 더욱 재밌을 것이라 생각한다.

뭐, 전체적으로 보자면, 분명히, 보고 난 뒤에 마음이 편해지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그 여운은 깊고 오래 남는다.

Posted by 루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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